국내 여행지 추천, 동해로 떠나는 겨울 레트로 여행 2편
국내 여행지 추천, 동해로 떠나는 겨울 레트로 여행 2편
  • 전지은 에디터
  • 승인 2020.01.29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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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방식은 보여주기showing와 들려주기telling다. 언뜻 보면 직설로 말하는 telling이 효과가 강할 것 같으나 생각을 강요하는 꼰대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생각을 장면으로 묘사해 근거를 제시하는 showing에는 판단의 여지가 있으며 결론의 개방성이 있다.

동해는 보여주는 도시였다. “옛날에는 말이야∼”로 시작하지 않으며 복고를 이야기하는 현명이랄까. 논골담길을 거닐다 묵호등대에 올라 작은 어촌을 눈에 담는 것, 인산인해의 오일장에서 시간과 취향을 발견하는 것. 동해가 우리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이다.
레트로피아 동해에서는 얼마쯤 시간을 잃어도, 잊어도 괜찮다. 다 괜찮다.

 

1# 가는 날이 장날; 북평 민속5일장

잠깐, 오늘 며칠이지? 친구가 (새해 며칠이나 지났다고) 손가락으로 날짜를 계산한다. 내일 장 서는 날이다!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대발견을 한 포스다. 장이 엄청 크다며 꼭 가보란다. 오일장은, 엄마가 친구들이랑 여행 갔을 때 호박엿과 건나물 사 오는 곳 아닌가. 주전부리를 많이 판다는 말에, 주차난이도가 없다는 말에 일정에서 망상 해수욕장을 빼고 오일장을 넣는다.

동해 사람들이 다 여기에 모였나 보다. 사람과 차가 진짜 많다. 아무 데나 주차하면 된다더니 눈을 크게 떠도 주차할 곳이 안 보인다. 시장 끝의 공영주차장이 널찍해 무사히 주차 완료. 하마터면 정초부터 친구 욕을 할 뻔했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걷다가 멈춘다. 이런, 지갑을 두고 왔다. 온갖 주전부리를 맛보려던 꿈은 어쩐다. Haste makes waste.

시식용으로 잘라놓은 사과가 정말 맛나 보인다. 돈이 없어 입맛만 다신다. 남편 지갑에 있는 만 원으로 실수 없이 시장을 즐겨야 한다. 주전부리의 시작은 너도나도 호호 불며 먹는 호떡이다. 겨울의 호떡은 너무 치명적이다. 동남아의 바나나로띠를 연상시키는 토스트도 참을 수 없어 3000원 쓴다. 정선 사과가 들은 토스트는 달콤해서, 더 먹을 수 없어서 애절한데 일회용품을 써 죄책감이 든다. 5000원밖에 안 남았는데 남편이 굳이 여기서 어묵을 먹겠단다. 500원짜리 먹으라고 했는데 계산할 때 보니 1000원짜리를 먹었네. 500원 때문에 진지하게 싸울 뻔했다.

“설거지 문화의 혁신, 진짜 잘 닦입니다.” 이 문구를 적으신 분은 광고계로 가셔야지 싶다. 시장이 이토록 무서운 곳이었나. 온갖 흉기 혹은 농기구가 모여있다. 쥐덫도 있다. 이 시장의 정체는 뭘까. 돌고 돌아도 새로운 품목이 나온다. 내 취향의 옷가게도 발견한다. 민속시장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다.

맘에 드는 꽃치마는 가격이나 묻는다. 의외의 가격에 허를 찔린다. 시장을 너무 만만히 봤구나. 카드 결제가 되는 카페에서 핸드메이드 컵 받침과 마스크를 산다.

강원도 사투리가 진하게 들리는 국밥집에서 장터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오는데 꽃치마가 아른거린다. 계좌이체로 살 걸 그랬다. 여행지에서 살까 말까 싶을 때는 무조건 사야 한다. 

북평 민속5일장
|  조선 정조 20년(1796년)에 시작한 3, 8일장으로 한 달에 6번 열렸으며 물물교환 방식의 정기시장이 열린 것은 더 이전으로 추정된다. 북평 5일장은 각종 교통망과 항만 등의 연계로 접근성이 좋아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짙은 향토색을 풍기는 영동 최대의 민속장이다. 북평(北坪)의 고유어인 “뒷들”은 삼척의 뒤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2# 지하세계 비밀 탐험; 천곡 황금박쥐동굴

숙소 가는 길에 큰 표지판을 본다. 황금박쥐는 진짜로 존재하는 생명체였구나. 숙소에서 1.2km여서, 올해가 쥐의 해여서, 심지어 황금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간다. 

동굴 입구에서 안전모를 준다. 어색하고 무거운 모자는 덜컹덜컹 불편하나 안전이 우선이다. 도심 속에 이렇게 큰 비밀세계가 있었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엔 4~5억 년 된 습기가 붙는다. 요르단의 사막을 지하로 옮겨오면 이런 느낌일까.

영화 “알라딘”을 떠올리며 램프가 동굴 어딘가에 있다는 강렬한 확신에 찬다. 램프를 찾아 지니에게 세 가지 소원을 빌고 싶다. 문장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 소원은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라이브앨범 나오게 해주세요, 그랬다가 살아 움직이는 앨범을 줄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신중히 소원을 고르고 다듬다가 그냥 이 태도로만 살아도 1년이 괜찮겠구나 싶어진다. 

종유석, 석순, 석주, 침식붕. 지구과학 시간에 들었을 단어들인데 현기증이 난다. 어떻게 자연적으로 이런 동굴이 생기지.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형상이긴 하다. 나의 얕은 지식에, 신비한 지구에 감탄하며 천장에 부딪힐까 봐 고개를 숙인다. 낮은 자세로 이승굴과 저승굴을 지나 동굴 밖으로 나오는 길, 조금은 겸손해진 내가 있다.

천곡 황금박쥐동굴
|  국내 여행지 추천, 천곡 황금박쥐동굴은 1991년 아파트 공사 중에 발견된 후 개발하여 1996년 일반에 공개됐다. 총 길이 1,510m의 석회암 수평 동굴로 생성 시기는 4~5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2차 생성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700m는 보존지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몸 색깔이 붉으면서 황금빛이 도는 황금박쥐는 천연기념물로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몇 안 된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1호로 지정한 희귀 야생동물로 천곡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1년에 1~2번 출현한다. 
|  매일 09:00-18:00 (17:30분까지 입장, 하절기 개방시간은 유동적)
|  이용요금: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미취학 아동 무료)

 

3# where were we?; 묵호동 논골담길

인도 라다크 레에서 산티스투파에 오를 때였다. 중간쯤 갔는데 복통과 함께 신호가 왔고, 화장실이 안 보여 1차 멘붕이 왔었다. 간신히 화장실을 찾았을 때, 가방에 늘 있던 그것이 없어 2차 멘붕이 왔더랬다. 살면서 멘붕이 오는 순간은,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그저 멀리 날아가기 전에 꽉 잡으면 된다. 그게 어렵지만 말이다. 좁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데 담화가 말을 건다. 때로 웃기고 때로 먹먹하다. 

엄마가 머리에 이고 가는 대야 안에는 만선과 오징어와 먹태와 자식이 있다. 옛날에는 자식 농사 잘 짓기 위해 열심히 벌어 공부를 시켰지만, 오늘에는 공부를 다 시켜놔도 취업이 안 된다. 그리고 자식은 농사의 대상이 아닌 요즘이다. 그때의 고생과 지금의 고생은 다른 형태일지 모른다. 우리는 동시대에 있으면서 전혀 다른 시대를 사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담화에 마음이 쓰이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서일까. 너무 다른 우리의 시간들이 논골담길에 있다.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묵호동
|  묵호항을 중심으로 어부와 가족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산비탈에 블록으로 벽을 올리고 그 위에 판자와 돌, 루핑, 슬레이트지, 양철 등으로 지붕을 올린 판잣집이 즐비했다. 외항선이 밤에 묵호항에 입항하면 산비탈 언덕에 있는 판자촌 불빛이 마치 고층 빌딩 숲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논골담길 벽화마을
|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묵호 등대마을에 묵호만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마을을 조성했다. 4갈래로 나눠진 골목을 둘러보며 오르다 보면 논골담길의 정상에 있는 묵호등대에 다다른다. 
|  논골1길: 옛이야기를 담고 있는 생활상을 담화로 표현한 1길은 묵호의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골목
|  논골2길: 사람들이 기억하고 희망하는 논골담길을 표현한 2길은 묵호를 사랑하는 마음에 집중하는 골목
|  논골3길: 황금기를 보낸 묵호의 과거와 어르신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담은 3길은 추억이 담겨있는 골목
|  등대오름길: 논골담길에 불어오는 새로운 희망과 바람 이야기가 담긴 이 길은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한 담화로 다수 구성한 것이 특징인 골목

 

4# 아는 동네였으면; 묵호등대

묵호동에서 모든 길은 등대로 통한다. 어느 길을 가든 위로만 가면 등대다. 논골담길 꼭대기에 있는 등대의 계단을 올라 꼭대기의 꼭대기까지 간다. 냉동 공장, 항구, 수산물위판장, 여객선 터미널, 원통형 공장(아마도 시멘트), 아파트, 동해(東海). 이방인의 눈에 보이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뉴트로 감성을 입히면 내가 아는 동해다. 참 괜찮은 곳이다. 

밤의 등대는 이곳의 골목길 하나, 집 하나까지도 속속들이 알 것이다. 나도 이곳이 아는 동네였으면 한다. 시간의 현자 같은 이 동네에 얼마쯤 물들었으면 한다. 

묵호등대
|  지금의 등대는 2006년에 개축한 것이다. 이전의 등대는 남자들은 지게로, 여자들은 대야로 자갈과 모래, 시멘트를 담아 날라 준공하였다. 6월 꽁치 철과 8월 오징어 철 사이, 하루에 보리쌀이나 밀가루 한 되 정도의 품삯을 받는 아르바이트였다.

 

5# 나를 잊지 말아요; 묵호항의 대게들

“이거는 정품이야. 한 마리 더 줄게.”
“집에서는 어떻게 쪄 먹어요?”
“요렇게 해서 일단 짠물을 빼고 물에 10분 담갔다가 솥에….”

듣기만 해도 번거롭다. 먹을 때야 좋겠지만 치울 때도 좋을까. 아줌마 설명을 실컷 들어놓고는 그냥 간다. 도무지 쪄 먹을 자신이 없다. 게들은 대야의 물속에서 다리를 까딱까딱하고 항구의 고양이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생선 살을 날름날름 먹는다. 왕 소라라도 사갈까. 겨울 항구의 소란에 발걸음을 다시 돌린다. 작년 이맘때 포항에서 먹은 대게를 잊을 수 없어 한 마리 더 준다던 집을 찾는다. 가족과 함께 가서 딸내미도, 남편도 잊고 식당 테이블에서 게와 나만 남았던 순간의 기억. 

한 치 앞만 보고 사는 나는, 한 치 앞의 게들이 “Eat me, eat me.” 하는 걸 지나칠 수 없다. 지극히 인간중심의 사고이나 나는 게가 아니므로 그럴 수밖에. 내 인생의 문장, 쓸데없이 고퀄이 여기서도 나온다. 가격이 조금 아니 크게 차이 나더라도 맛있는 게를 먹고 싶다. 적게 먹더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다. 자주 사 먹는 아이템이 아니므로 큰맘 먹고 고른다. 흥정을 못 하는 남편이 어쩌다 서비스로 한 마리 더 얻었다. 북평시장에서의 만행을 용서해준다. 

게를 사고 나니 그제야 묵호항이 보인다. 유행의 첨단도시로 불릴 만큼 번성했던 이 항구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가라앉아 있을까. 더 이상 잡히지 않는 명태, 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있는 개, 그리고 검은 바다(墨湖)에 부는 새로운 바람이 있지 않을까.

묵호항을 떠나 동생네로 가는 길 내내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다. 하늘 파란 동해가 벌써 그립지만 차 트렁크의 게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운전한다. 게는 동생이 찔 것이다.

묵호항
|  석탄과 시멘트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서 화주와 선원이 몰려들어 요정과 백화점이 문전성시를 이룬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자 명태, 오징어 등의 어획량이 풍부한 어촌이었다. 1983년 동해항이 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함에 따라 묵호항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명태의 어획량까지 감소했다. 요즘은 명태가 잡히지 않아 부산에서 냉동 원양어를 사 온다. 

 

#6 아쉬움에 적는

‘동해시민의 주관적인 추천 맛집’

여행에서는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아야 한다. 아끼다 못 먹는다. 동해가 아는 동네가 될 즈음에 하나씩 먹어주리라. (※주의사항: 늘 그렇듯 맛집은 주관적이므로 본인 취향에 맞는지 검색은 필수)

| 소복소복: 새우 소바, 전화하니 재료 마감
  동해시 평원5길 8-5/ 033-533-3799

| 피오레: 수제버거 포장을 고민하다 지나침
  동해시 평원1길 120/ 033-533-9952

| 능나도회냉면: 겨울이라 3시에 이미 문 닫음
  동해시 중앙로 160/ 033-531-9003

| 수림: 멍게해초비빔밥, 묵호항 구경하다 찾았으나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그냥 감
  동해시 일출로 2-3/ 033-532-2702

| 다이버구이: 생선구이, 수림과 마찬가지의 이유
  동해시 일출로 91/ 033-533-9289

| 부흥횟집: 다른 물회 식당을 가는 바람에 못 감
  동해시 일출로 93/ 033-531-5209

| 피아노: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 망상 해수욕장을 포기해서 여기도 포기
  동해시 동해대로 6270-18/ 033-534-3666

 

사진 : 에디터 소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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