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가볼만한곳, 홀로 떠나는 사색 여행 1탄 : 경북 영천
영천 가볼만한곳, 홀로 떠나는 사색 여행 1탄 : 경북 영천
  • 전지은 에디터
  • 승인 2019.11.25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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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에 할머니 댁에 가면 아궁이에서 나무 때는 냄새가 나곤 했다. 그 냄새를 맡을 때에야 방학이구나, 했다. 영천에 도착한 늦은 밤, 주변이 캄캄한데 고택의 대문 앞에 아주머니가 서 계셨다. 그리고 익숙한 겨울 방학의 냄새가 났다. 
이번 여행은 맛있는 음식을 건강하게 먹고 고택에서 밤을 보내며 시골 마을을 산보한 방학이었다. 노랑빨강으로 물든 곳곳을 오가는 길에 즐기는 가을 방학. 별책부록인 탐구생활에는 미술관과 와인터널과 운문사가 담겨 있다. 가을 방학은 짧으므로 숙제 걱정은 말고 오롯이 즐겨야 한다. 

 

1) 술을 부르는 한우롤 ; 영천 별빛야시장

이름도 예쁜 야시장이어서 은근 기대했다. 늦게 출발한 터라 마음이 급했지만 가는 길이니까 들르자 했다. 도착했는데 주변이 휑하다. 문 연 가게가 별로 없어 보인다. 검색을 잘못했나.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간이 점포들만 몇 있다. 

“별빛야시장이 어디예요?”
“여기예.”
“오늘 야시장 안 열리나요?”
“지금 하고 있잖아예.”

추측건대 평일이라 상설시장의 점포들은 퇴근하고 대표 점포들만 근무 중인 게 아닐까. 다행으로 먹고 싶었던 한우롤 점포는 문 열었다. 포장마차 느낌의 의자에 앉아 반신반의하며 한우롤을 먹는다. 부드러운 고기에 채소가 익혀진 롤은 술술 넘어간다. 차를 안 가져왔어야 술을 하지. 여름이 생각나는 DJ DOC의 노래를 들으며 따끈한 어묵을 먹는, 두 계절이 공존하는 느낌의 야시장이다. 한적한, 폐점 직전의 야시장도 나쁘지 않네.

별빛야시장
| 경북 영천시 시장4길 38 (영천공설시장: 상설시장/ 2일, 7일 오일장)
| 휴무일: 일요일/ 개장시간은 변동 있음

 

2) 빨강머리 앤의 손님방 같은; 귀애고택

돌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는 길, 깜짝 놀란다. 이것이 진짜 양반의 집이구나.

방문 앞에 서서 마당을 내려다본다.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더니, 양반의 눈높이는 이거구나. 양반댁 마님이 된 기분이다.

역시 대문채 말고 작은 안채를 예약하길 잘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뜨끈한 방바닥이 반갑다. 쩔쩔 끓는다. 린드 부인이 만들었을 법한 느낌의 이불이다. 빨강머리 앤이 묵고 싶어 한 손님방 같다. 별이 총총한 오늘 밤은 푹 잘 것 같다.

아침에 고택 주변을 산책한다. 메뚜기와 은행을 피하며 조심조심 걷는다. 무작위로 핀 코스모스가 예쁘다. 갑자기 박하 냄새가 난다. 혹시 이 풀이 스피아민트? 저 앞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 생각나는 길이 있다.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아쉬워할 수 있으므로 간다.

작은 저수지 같은 곳에 갈대인지 억새인지가 피어있다. 둘은 맨날 헷갈린다. 적확하게 알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런다. 그냥 보고 좋으면 됐다.

아침 이슬에 운동화가 젖었다. 어쩌면 시나브로 묻는 아침이슬 같은 하루하루가 거대한 삶을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천천히 조용히 스미는, 내가 걷는 길의 아침이슬들. 오늘의 아침이슬 덕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간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귀애고택 & 귀애정
기존의 경상도 고택과 다르게 호남의 개방형 한옥구조이며 큰 연못과 구름다리로 연결된 육각정이 있다. 그중 귀애정은 문화재자료 제339호이며, 별별미술마을에 포함되어 4개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귀호1길 37-17
| 054-331-8043
| 작은 안채·대문채 100,000원, 귀애정(방 3개) 420,000원

 

3) 이성과 감성 충전; 시안미술관

오늘 손님이 있는지 대문채 아궁이에 불을 때시는 아주머니와 하니에게 인사하고 시안미술관으로 간다. 차로 10분 거리다. 여기가 별별 예술마을. 걸어서 마을을 돌아보기만 해도 좋겠다. 오후에 많이 걸을 예정이므로 생각만 하고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미리 문의한 대로 타일 데코를 신청한다. 너무 기대된다. 미술관에서 이런 거 꼭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작은 종이를 받으니 당황스럽다. 아이는 받자마자 연필로 그리지만, 어른에게는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아무거나 그리세요. 아무거나 먹어요. ‘아무거나’는 세상 어려운 말이다. 아무거나 뭘 그린담. 쿨한 (척하는) 어른은 연필 말고 색연필을 꺼내 들어 줄을 긋는다. 복잡한 인간의 생각을 줄로 표현한다. 영원한 방향성인 별 하나도 그린다. 욕심은 많아서 모든 색연필을 쓴다.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

2층 카페에 오니 곳곳이 가을 풍경이다. 바깥은 나무가 노랑빨강, 안은 커튼이 노랑빨강. 여기에 실험적인 음악과 파랑 그림. 미술관 카페야, 온몸으로 말한다. 밀린 감성 충전을 만끽하는 방학이다. 커피와 빵이 빠질 수 없어 포카치아 샌드위치 세트를 시킨다. 빵을 기다리며 아까 만든 걸 흐뭇하게 본다. 아, 참 좋다.

시안미술관
| 영천시 화산면 가래실로 364
| 054-338-9391~3
| 10:30-17:30 (마지막 입장 오후 5시)/ 월요일 휴관
| 관람료 3,000원, 타일데코 10,000원, 머그컵 12,000원/ 프로그램 홈페이지 참조 http://www.cyanmuseum.org

 

홀로 떠나는 사색 여행. 2탄에서 계속.

사진 : 에디터 소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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