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국내여행지 추천, 합천과 구례로 떠난 가을 산사 답사기
11월 국내여행지 추천, 합천과 구례로 떠난 가을 산사 답사기
  • 전지은 에디터
  • 승인 2019.11.18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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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후폭풍이 지나가고 대학교 신입생이 될 날만 기다리던 하루하루였다. 친구가 해인사에 간댔다. 불교 신자인 친구가 조계사 대학생회에 막 가입했을 때, 마침 수련회가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대학생회 신입 회원이 되어 해인사에서 4박 5일을 보냈더랬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수학교육과의 지리산 등반에 가고 싶어서 수학과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수학과 교수님의 그때 표정은 ‘아니, 얘는 뭐지?’였다. 이후 나는 수학과에서 셀럽이 되었지만, 지리산 등반은 참 좋았다. 

오래된 장소에 가면 그때의 내가 팝업 창처럼 튀어나올까. 작은 시간의 조각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 순간들이 많은 날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이 어울리는 계절에 오래된 곳을 다시 찾는다. 완연한 이 가을날에는 무엇을 만나든, 무엇을 보든 다 좋으리라.

 

 

1. 그냥 다 좋은 합천 해인사

; 팔만대장경판, 소리길, 달의 정원

 

1)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

해인사 입구

가야산 해인사. 이보다 예쁜 이름의 절이 또 있을까. 주변에 바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내륙이라 왜 바다 해 ‘海’를 썼는지 궁금해진다. 가야산의 가벼운 이름도 궁금하다. 라틴어 수업처럼 이름을 파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짧은 한자 지식으로는 감이 안 잡힌다.

해인사, 가야산 팻말

그런데 절 입구의 팻말에 친절하게 설명해놓았다. 이래서 요즘엔 팻말을 다 찍어 온다.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이 거기에 숨어 있다.

승가대학 토론대회 플래카드 / 해인사 전경

승가대학 토론대회도 있다. “호국불교는 계율과 상존 가능한가, 불교의 전쟁 참여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팔만대장경판이 있는 해인사다운 주제다. 오늘이 결선이다. TV의 정치 토론과는 다를, 스님들의 토론을 보고 싶으나 저녁에 한다. 하산해서 밥 먹을 시간이다. 점심으로 못 먹은 산채비빔밥을 먹어야 한다. 

템플스테이 하는 곳을 지난다. 법복을 입고 금강경 수업을 들었던, 음식물을 1도 남기지 않아야 성공하는 발우공양을 했던, 108배를 하고 쐬었던 겨울밤의 공기가 지나간다. 깔깔대며 친구와 화장실에 가는 내가 보인다.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보지만 글쎄다.

해인사
|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의 이름은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출처: 해인사 홈페이지)

 

2) 신비의 비결은 정성과 과학; 팔만대장경판과 장경판전

장경판전 전경
틈 사이로 보이는 팔만대장경판

원목을 바닷물에 삼 년 동안 담가 뒀다가 꺼내어 판자로 짠 것을 다시 소금물에 삶아낸다. 그늘에 말린 뒤 깨끗하게 대패질해 판을 만드는, 느리고 정성 가득한 작업은 오늘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다해 만든 문화유산 앞에 서면 반성하게 된다. 너무 빨리 이루고 싶어서 너무 빨리 지치는 게 아닌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은 건 아닌지 말이다. 속성으로 되는 건 세상에 없다. 
시간이 길게 지나간 책들에 짧은 가을 햇살이 갇혔다. 구름도 절에 걸렸다. 

팔만대장경판
|  고려 고종 때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판각(板刻)한 대장경판으로 국보 제32호다. 부처님께서 진리의 세계에 대해 말씀하신 법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포함한 총서(경·율·론)를 81,350판에 달하는 목판에 양각으로 새겨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이며 교정이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으로 평가받고 있다. 총 1,541 경전과 52,389,400글자와 6,791책으로 되어있다.

장경판전의 과학
|  장경판전은 통풍이 잘되고 일조량이 적당하도록 하여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인 항온, 항습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있다. 외벽의 앞뒷면에는 크기가 다른 살창이 칸마다 아래위로 나 있어서 건물 뒤쪽에서 내려오는 습기를 억제하고, 판전으로 불어온 바람이 건물 안에서 골고루 퍼진 다음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3) 최치원이 생각나는 계곡; 해인사 소리길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시비 다투는 소리 귀에 닿을까 늘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 버렸다네.

 _<제가야산독서당 題伽倻山讀書堂>, 최치원

홍류동 계곡물

해지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소리길에는 소리만 가득하다. 최치원의 소리를 듣는다. 내 안의 시끄러운 소리도 홍류동 계곡 물소리에 묻힌다. 시끄럽고 평온한 시간. 빨강 아닌 단풍은 초록별이다. 단풍이 생각보다 늦게 온다. 인터넷에서 왜 단풍 절정 시기를 확인하라고 하는지 이제 알겠다. 너무 일찍 와서 아오리사과 같은 가야산을 보고 간다. 오메, 단풍 들겄네.

해인사 소리길
|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조차 붉게 보인다고 하여 홍류동(紅流洞) 계곡이다. 대장경 테마파크를 시작으로 고운 최치원이 반해 신선이 되었다는 홍류동 계곡을 지나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6km의 코스다. 

 

4) 가야산의 운아한 밤; 달의 정원

한옥스테이 '달의 정원' 입구

저녁 6시 52분, 달의 정원 카페. 가야산의 나물들로 배를 채우고 왔다. 문밖은 가야산 물소리로 시끄럽고 시원한데 카페 안은 은연하다. 굉장히 오래된 사람 같았던 오늘, 감성 넘치는 음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니 회춘하는 느낌이다. 아직 30대라 다행이다.

달이 보이는 카페

나이 들어서도 이런 카페에서 하루를 끄적거리며 마무리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팔만대장경처럼 나이 먹을수록 고고해졌으면 한다. 달빛의 시간처럼 은은하게 은백색의 시간이 머리에 내려앉았으면 한다. 

온통 은빛인 방에 눕는다. 계곡 물소리와 함께 가야산이 옆에 눕는다. 다붓하고 평온한 하룻밤이 아쉽다. 며칠 묵으면 귀가 깨끗해지고 눈이 시원한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여행은 얼마쯤 모자라서 그리운, 밑 빠진 독이다. 그래서 새 물을 붓는다.

달의 정원
|  한옥 스테이 & 카페, 홈페이지 http://dalsgarden.edenstore.co.kr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1길 13-31
|  055-934-0107
|  일반 온돌방 주중 90,000원, 주말 100,000원

 

 

 

2. 지리산과 섬진강을 둘러 가는 구례 여행

; 지리산정원, 호수공원, 화엄사, 섬진강 식당

 

1) 여기는 지리산 네버랜드; 지리산정원

지리산정원 풍경

동화적 상상력이 다분한 숲이다. 빨강머리 앤이 숲의 정령과 놀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른인 내 눈에도 숲의 요정이 보인다. 팅커벨아, 너는 어쩌다 지리산까지 왔니.

지리산 구절초
도토리 키재기
손에 모은 가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을 모아놓고 보니 고만고만하다. 도토리 키재기는 이래서 나온 말이구나. 세상의 짧은 말 중에 틀린 말이 없다. 가을을 손에 모아놓는다. 동글동글 귀여운 가을이다.

토끼와 거북이다. 토끼야, 울지 마.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란다. 어쨌든 네가 거북이보다 빠른 건 사실이잖니. 그래도 다른 사람은 무시하지마. 느린 게 잘못된 건 아니란다. 토끼를 토닥여주고 그네를 탄다. 어렸을 땐 잘 못 탔는데 이제 제법 탄다. 그래도 흔들흔들 내려갈 때는 살짝 무섭다. 불안을 이기고 착지를 잘해야겠다.

아저씨 한 분이 놀이터의 쟁반을 징처럼 연주한다. 지징지징징지지지징. 지리산에 어울리는 아저씨다. 그네까지 타신다. “애기들 것이지라, 그래도 탈 만 하당께.” 같이 온 아주머니도 그네를 타신다. 궁금증이 폭발하지만 뒤돌아서 그네 타는 중년의 아저씨를 볼 용기는 없다. 그네 타는 아이에게도 말을 거신다. “발 펴고 오므리고, 계속 그렇게 해야 그네가 나가. 잘 타네이.” 역시 그네를 잘 타는 방법은 꾸준함이다. 

우린 아직 꿈을 꿔도 돼요. 김동률의 ‘동화’를 흥얼거린다. 여기는 지리산 네버랜드, 나는 꿈꾸는 어른이.

지리산정원
|  산림휴양·문화·체험·교육 중심의 복합 공간.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서쪽에는 야생화생태공원(야생화 테마랜드, 지리산자생식물원, 구례생태숲, 숲속 수목가옥), 북동쪽에는 산림휴양 타운(구례수목원, 산수유자연휴양림)이 있다.
야생화 테마랜드: 음악분수, 소나무 숲길, 잔디광장
|  전남 구례군 광의면 온동2길 124
|  061-780-2891
|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미취학 아동 무료

 

2) 달밤에 산책; 지리산호수공원

지리산을 등반하는 여행은 아니다. 지리산을 훑는 여행이랄까. 치즈와 오이가 눈물 나게 맛있을 정도로 힘들었던 옛날의 기억에 등산은 꿈도 꾸지 않았다. 가까이서 오를 때는 험준하고 힘들었던 지리산이 멀리서 볼 때는 푸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와 어리둥절하다. 그래서 롱숏 long shot으로 보는 세상은 희극이고 클로즈업 close-up으로 보는 세상은 비극인가.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멀고 가까운 사이에서 균형 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더블샷 아메리카노 같은 시점으로, 깔끔하고 진하게 지리산을 미독(味讀)한다.

전망대 오르는 중

지리산호수공원을 따라 산책한다. 옹기종기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며 전망대에 오른다.

달이 비친 호수

멀리 보이는 지리산의 실루엣이 곱다. 너 정말 지리산 맞니. 산등성이 위로 달이 보인다. 그새 깜깜하다. 달빛을 손전등 삼아 조심조심 내려간다. 다리를 건너는데 호수에 달이 걸려 있다.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이야.

지리산호수공원
|  구만제에 조성된 농촌테마공원. 여름에는 수상 레포츠를 체험해볼 수 있다. 공원 내에 연꽃단지, 산수유공원, 구름다리, 산책로 등이 있다. 공원 내의 인공폭포 옆길로 오르면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는데 전망대에서는 구례읍과 노고단, 사성암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인근에 지리산치즈랜드, 지리산온천, 야생화 테마랜드 등이 있다.

 

3) 울긋불긋 문화재 보고, 구례 화엄사(華嚴寺)

화엄사 입구
각황전 전경

숙소 가는 길에 화엄사 표지판을 봤더랬다. 유명한 절은 방문하기 전에 공부를 좀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없던 일정이어서 그냥 간다. 입구의 팻말부터 본다. 아니 뭔 국보랑 보물이 이리 많냐. 각황전, 4사자 삼층석탑. 많이 들어본 단어인데 날씨가 좋아 머리를 더 쥐어짜지 않고 들어간다. 

동창 여행을 온 어른들의 분위기에, 화엄사의 화려한 자태에 가을 같은 흥이 난다. 해인사도, 화엄사도 너무 일찍 찾았다. 가을 절정에 찾으면 인파가 장난 아닐 거야, 합리화하며 각황전을 본다. 이름 때문인가. 크고 오래된 2층의 건물에서 깨달음에 대한 장엄함이 느껴진다. 사진가 같은 분이 앞의 석등을 열심히 찍으신다. 가신 후에 나도 찍는다. 팻말을 보니 국보 제12호다. 국보라기에 다시 찍는다. 타이틀은 가치를 부여한다. 

사사자 삼층석탑 보러가는 길

“구례 사사자 삼층석탑 가설시설 보완 공사 중이므로 출입을 통제합니다.” 돌계단을 올라갔으나, 크게 인화된 포스터만 보고 내려온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지만 반짝이던 좁은 길이 좋았다. 내려오는 길에 무한한 수명을 보장해주는 부처님, 아미타불이 보여 건강을 기원한다.

보제루에서 보이는 화엄사

보제루에서 잠시 쉰 후 화엄사를 떠나려는데 ‘7년 된 매실차, 약 대추차’가 눈에 꽂힌다. 커피 말고 약 대추차를 홀짝인다. 소원을 이루려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화엄사
|  화엄사는 6세기 중엽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당 등의 수행공간이,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이 있다.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합된 가람 배치, 4사자 삼층석탑, 각황전 앞 석등, 모과나무 기둥이 독특한 구충암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4) 섬진강이 키운, 다슬기 토장탕

최적의 루트를 짜려고 장소를 검색하다 다슬기 수제비를 알았다. 섬진강 지방까지 왔으니 이건 먹어보자 했다. 도착했는데 번호표를 준다. 식사 시간을 살짝 벗어나선지 금세 부른다. 모두가 인증한 메뉴를 먹는 게 안전한 길이지만 이왕 온 거 다른 음식도 먹어보면 좋지 않은가. 검증된 수제비 하나, 듣도 보도 못한 토장탕 하나를 주문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 수제비다. 무모한 짓이었나, 후회하며 기다린다. 토장탕은 대체 뭘까. 예상을 깨고 평범한 모양의 국 한 그릇이 나온다. 술도 안 마셨지만 개운하게 해장한다. 이것은 된장국인가, 해장국인가. 입안에 섬진강이 퍼진다. 

집으로 가는 길, 차창 옆으로 남도의 황금 들판이 넘실댄다. 배고픔을 겪은 세대도 아닌데, 보기만 해도 배부른 이 황홀은 뭐지. 섬진강의 다슬기를 먹고 와서 그런가. 지리산 (둘레) 여행은 섬진강으로 완벽하게 마무리. 이걸 안 먹고 왔으면 어쩔 뻔 했을까이. 

섬진강 다슬기 식당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5041
|  061-781-9393
|  다슬기 수제비 8,000원/ 다슬기 토장탕 9,000원/ 다슬기 무침 중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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