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안동, 나의 여행 답사기 1탄 : 경상북도 편 (봉정사/월영교/맛집/카페/숙소)
쉬어가는 안동, 나의 여행 답사기 1탄 : 경상북도 편 (봉정사/월영교/맛집/카페/숙소)
  • 전지은 에디터
  • 승인 2019.10.08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다. 내 여행은 짧은 호흡으로 하루면 다녀올 곳들을 긴 호흡으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적당히 보고, 적당히 쉰다. 책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 자연스레 속력은 더 떨어진다. 하지만 속력과 방향을 모두 포함하는 속도는 깊어지지 않을까. 게으른 여행자의 변명이지만 여행에서까지 굳이 부지런 떨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너스레를 떨어야만 할 것 같은 안동에서는 더더욱. 답사는 삼간(三間)을 보는 거란다. 삼간은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다. 이 셋을 모두 보고 올 수 있는 곳, 답사의 정석을 느낄 수 있는 곳, 안동이다.

퇴색한 고가(古家)와 재실(齋室), 운치 있는 누정(樓亭)과

늠름한 서원(書院)들이 펼쳐 보이는 이 유서 깊은 옛 고을의 풍광은

조선 시대의 한 정경을 연상케 하는 명실공히 양반문화의 보고로,

달리는 차창 밖으로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답사가 된다. 
_유홍준,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가을에 더 좋은 안동; 봉정사, 월영교

1) 세계적인 봉정사; 극락전, 영산암

불교를 믿지도 않으면서 오래된 절을 좋아한다. 일단 오래된 산사는 산속에 있어 공기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절까지 걸어 올라가는 산길은 부담스럽지 않은 트레킹코스가 된다. 서두르지 않으며 가는 그 길에 세속의 물욕 하나쯤은 버리게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럴 리 없으나 조금은 가벼워진 그 느낌을 좋아한다. 

봉정사 극락전. 한국사 1급의 머릿속에서 세트로 생각나는 단어다. 봉정사에서 하필 왜 극락전인지 벼락치기 공부는 기억해내지 못해 찾아본다.

극락전 국보 제15호, 대웅전 국보 제311호. 순서는 중요도의 방증이다. 극락의 극치를 표현해놨나. 속세에 찌든 현대인은 극락이 궁금해 봉정사를 첫 여행지로 잡는다.

봉정사의 제맛을 알려면 영산암까지 가야 한다기에 그곳부터 간다. 맛있는 걸 제일 먼저 먹는 타입이다. “감정 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이란다. 음, 예쁜가? 소박한가? 어떤 제맛? 생각하기를 멈추고 조용한 암자를 거닌다. 나중에 책을 다시 봐야겠다. 

극락전은 고려 시대에 지은, 고구려식 혹은 통일신라 양식의 건축이다. 책과 홈페이지의 설명이 다른데 100% 확실한 것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고증하는 방식이어서 그럴 거다. 역사의 재미는 언제라도 이야기가 바뀔 수 있는 개방성과 상상성에 있지 않을까. 여하튼 내 눈에 명확하게 들어오는 건 최고(最古)의 시간이다.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뿜는 시간의 증기는 극락에 갈 정도로 화려하진 않지만 클래식하다. 극락도 뺄셈의 방식이었나 보다.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만 충실한 미니멀리즘이 여기 있다.

“극락전의 또 다른 매력은 낮게 내려앉은 지붕”이라는데 아파트에 익숙한 나는 낮은 줄도 모르고 천장이 시원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 마음이 점점 좁아지나. 실제로 신경 건축학에서는 천장이 높은 공간에 있을 때 사람이 더 창의적이고 추상적으로 사고한다고 말한다. 안동에 오니 나도 인문학자다.

*“ ” 인용: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경상권》

봉정사
| 도력으로 날린 종이 봉황이 날아가 앉은 자리라 하여 봉정(鳳停)사. 672년 능인대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 대웅전: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가 건물을 해체 수리하면서 건립연대가 밝혀져 국보 제311호로 승격되었다.
| 극락전: 현존하는 목조건축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건물로 단순하면서 힘 있는 것이 고식의 요체다.
| 영산암: ‘ㅁ’로 배치된 건물, 중정의 바위와 소나무, 안마당은 암자의 일상의 편안함을 보여주는 곳이다.
(출처: 봉정사 홈페이지)

 

2) 봉정사 오가는 길에; 황토집손두부, 그녀의 홈카페

내비게이션에 ‘봉정사’를 치니 여러 단어가 같이 검색된다. 사람들이 많이 찍은 단어다. 그 중 ‘봉정사 황토집손두부’가 눈에 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역시나 맛집이다. 더 찾아보지 않고 점심을 여기서 먹기로 한다. 점심 메뉴는 배추전, 손두부, 보리밥. 직접 재배한 콩으로 가마솥을 활용해 만든 손두부는 봉정사에 어울리는 맛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나름 스마트한 여행이다.

봉정사 가는 길에 눈여겨 둔 카페를 찾는다. 뭔가 촉이 발동되는 카페가 한적한 마을 곳곳에 있는데 이름 보고 정해두었더랬다. ‘그녀의 홈카페’의 그녀는 누구일까.

낯선 카페의 메뉴판 앞에선 혼란이 온다. 다시 오기 힘든 곳에서 순간의 선택은 중요하다. 메뉴 하나로 여행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 위장은 또 왜 이렇게 한정적인지. 진열장 안의 저 과일 케이크는 뭘까, 그래도 이 날씨에 빙수는 먹어야겠지. 인절미 빙수를 주문하고 덧붙인다. 골드키위 생크림 케이크는 포장해주세요.
숙소에서 먹은 케이크는 꿈 같은 맛이었다. 플라스틱스푼을 넣어주지 않아 더 좋았다. 포장 용기였던 종이를 잘라 뭉툭 베어 먹는 케이크는 죄책감 없이 맛있었다.

봉정사 황토집손두부
_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5-3
_054-855-3263
_월요일 휴무
_보리밥 5,000원(2인 이상 주문), 손두부 반 모 4,000원, 배추전 5,000원

그녀의 홈카페
_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103-1
_010-9911-0621
_매일 10:00–21:00
_골드키위 생크림 케이크 6,000원, 인절미빙수 11,000원

 

3) 찬란한 가을의 유화; 월영교

동선이 길어지는 루트는 짜지 않는다. 이동 거리가 늘면 버리는 시간도 늘어나 별거 안 해도 피곤하다.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면 포기한다. 애초에 가고 싶은 한 곳을 골라 그 주변을 중심으로 루트를 짠다. 여행의 소모를 줄이기 위한 타협이다. 그래서 병산서원은 포기하고, 숙박할 곳 주변이라는 이유로 월영교에 간다. 

찬란한 가을날의 드라이브는 가는 길이 내내 유화다.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밝고 강렬한 유화에서 파란 하늘이 뚝뚝 떨어진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가 생각나는 가을은 너무 짧다. 월영교에 서서 안동호를 바라본다. 이 규모가 인공이라니, 속은 느낌 마저 든다.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아내가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모양을 담아서인지 월영교는 어두컴컴한데, 하늘은 눈이 부시다. 가을은 참 예쁘다.

월영교
|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안동호에 놓인 우리나라 최장의 목책교. 다리 한가운데에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월영교란 이름은 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온 인연과 월곡면, 음달골의 지명을 참고해 지은 것. 이 지역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2. 삼간(三間)을 All-inclusive로 즐겨; 구름에 리조트

배낭여행은 좋아하지만 몸이 고생스러운 여행은 싫다. 마녀 체력이 아니라서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인정해야겠다. 숙소가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올해는 유난히 비도 자주 오고 주말마다 태풍을 만나는 것 같아 더 신중해진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만 읽어도 좋을 곳인지, 숙소에만 박혀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곳인지 상상하며 고른다. 그런데 그림책 도서관과 북 카페가 있고, 담박한 조식을 주는 한옥 리조트가 있다면?

 

1) 한옥에서 책 읽는 즐거움; 구름에 on & 구름에 off

'구름에 on'은 그림책 공간이고 ‘구름에 off'는 북 카페다. All-inclusive 패키지로 예약해서 무료로 이용한다. 조삼모사인 건 알지만 공짜라는 말에 기분이 좋다.

전시 중인 팝업 북을 보고 아래로 내려가 책을 쭉 훑는데 오오. 평소에 접하기 힘든, 비싼 책과 외국 그림책이 많이 있다. 어른이 보면 좋은 그림책도 섞여 있다. 한옥 창살 틈새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을 맞으며 그림책을 본다. 
구름에 오프로 가서 석류 에이드를 주문하고 책장을 둘러본다. 오오오, 이 큐레이션은 또 뭐지. 읽고 싶은 책 왜 이리 많아. 요네하라 마리의 수필?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 예쁜 곳이 안목까지 탁월하다. 겉과 속, 모두에 신경 쓴 공간이다. 

구름에on
_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그림책 컬렉션 공간
_월~금 12:00–18:00/ 토 12:00-21:00/ 일 10:00-18:00
_입장료 3000원(1시간 이용), 전시회 무료
_그림책, 코라이니 스페셜, 블록 놀이

구름에off
_라이프스타일이 제대로 큐레이션 된 한옥 북카페
_매일 08:00–21:00
_음료, 브런치(고등어 파스타, 쑥떡와플 등), 빙수

 

2) 퇴계 이황을 만나는 가을; 뮤지컬 “퇴계 연가-매향梅香”

핫핑크의 플래카드가 눈에 띄어 무심히 보니 뮤지컬 공연 안내다. 오늘 며칠이더라. 날짜 개념 희박하게 그날그날을 산다. 천자문 마당에 가니 공연 장치가 있다. 핸드폰의 날짜를 다시 본다. 횡재다. 오늘 뮤지컬 공연이 있다.

저녁 먹고 올라가 맨 앞줄에 앉는다. 고택은 별다른 꾸밈없이 그대로 무대가 된다. 별이 총총한 밤에 매화를 사모한 남자의 연가를 듣는다.

뮤지컬이 끝날 즈음 이육사가 이황의 후손임을 안다. 안동을 ‘정신문화의 고장’으로 표현하는 자부심은 여기서 나온 거구나. 저 매화나무 물 줘라. 이황의 마지막 말이 여운을 남긴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고맙습니다》라고 한 올리버 색스와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한 《타샤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남길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 나중에 저런 말을 하려면 지금도 잘 살아야겠는데. 매화 향 나는 가을밤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방에 간다. 

 

3) 고택에서의 하룻밤; 시간 여행자의 방

계남고택 중간방. 안동댐 건설로 수몰당할 뻔했던 1800년대(추정) 건물이다. ‘들을 안동이지 볼 안동이 아니다.’ 안동의 곳곳에 이야기가 있다.

고택의 낡은 외양과 다르게 방안은 윤이 난다. 한지 발린 방의 보라색 광목 이불은 색감도, 촉감도 곱다. 집에 가져가고 싶다. 안 파냐고 묻고 싶지만 비쌀 것 같아 참는다. 내 이름이 적힌 카드와 한과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물씬 난다. 이러려고 돈을 번다. 

누워서 시간에는 방향이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 200년 된 시간과 함께 있자니 맞는 것 같다.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아닌 순간을 만나고 있다.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화장실이 밖에 있어 조금은 불편하고, 시간이 밖에 있어 조금은 특별하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의 고무신을 신고 나선다. 시리게 개운한 산 공기를 마시며 리조트를 한 바퀴 돈다. 온전히 하루가 깨어나기 전의, 아침 햇살로 반짝이는 산책. 내가 더없이 좋아하는 시간이다. 아침 산책은 여행의 선물이다. 

떠나기 전에 안동국시 체험을 한다. 밀가루와 콩가루가 섞인 반죽을 밀대로 돌돌돌 밀고 칼로 착착착 썬다. 안동국시의 포인트는 ‘얇게’라는데 칼질이 서툴러서 칼국수 면발이 되고 있다. 안동의 셰프 아주머니가 예쁘게 썰었단다. 멀리서 보셔서 그렇다. 가까이에 오셨을 때는 입을 다무시더라.

육수에 배추와 국수를 넣고 팔팔 끓인다. 많은 재료를 넣지 않고 깔끔하게 먹는 안동국시다. 어제는 이 주방에서 샹송을 들으며 안동찜닭을 먹었는데 오늘은 전통을 먹는다. 국수로 점심까지 해결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서비스로 받은(아침부터 공사한다고 미안하다며 주셨다) 캐러멜마키아토로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 커피 엄청 맛있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안동 여행이다.

구름에 리조트
_구름처럼 느리게 쉴 수 있는 한옥 리조트
_경북 안동시 민속촌길 190
_054-823-9001
_All-inclusive 패키지: 숙박+조식+석식+음료+그림책공간+전통체험 (주중만 가능), 계남고택 중간방 249,900원(3인 기준)
_4개의 독채를 포함해 총 11개의 객실로 구성

 

나의 여행 답사기 1탄. 경상 안동편 끝.

 

사진 : 에디터 소장사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